△HD한국조선해양이 지난해 글로벌 해운사 MSC에 인도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 연료 추진 컨테이너 운반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HD한국조선해양]
산업통상자원부가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잠정 결정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긴장 상태에 놓였다. 정부의
결정으로 후판을 생산하는 철강업계는 숨통이 트일 전망이지만, 10여 년간의 불황을 거쳐 최근 호황기에
접어든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 비용 상승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20일에 열린 예비조사 결과 중국산 후판 덤핑 수입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7.91~38.02%의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해달라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철판으로, 국내에서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사가 생산하고 있다. 철강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후판이 전체 철강 제품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15%에 달한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 철강사들은
후판 가격 인상 압박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반덤핑 관세 부과로 인해 선박 건조 원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선박 건조 원가 중 재료비 비중은 50% 이상이며, 특히
후판 가격은 조선사의 수익 구조와 직결된다.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간 후판 가격 협상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으나, 올해까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통상적으로
후판 가격은 선가의 20~30%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국내 조선업계가 주력으로 건조하는 LNG 운반선의 선가는 약 3,600억 원에 달한다. 이때 후판 가격이 10% 상승하면 선가는 72억108억
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영업이익이 대부분 상쇄되는 수준이다.
또한 국내
조선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자국산 저렴한 후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조선사들은 최소한의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외국산 후판을 일부 사용해왔으나, 이번 조치로
인해 원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사들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원자재 구매
다변화 전략을 추진한 바 있다. 국내 철강사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후판 가격을 톤당 6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인상하면서, 조선업계는 해외 수입 후판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실제로
높은 후판 가격 부담으로 인해 한국조선해양은 2021년 매출 15조 4,000억 원, 영업손실 1조 3,000억 원을 기록했고, 대우조선해양도 매출 4조 4,000억 원에 영업손실 1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해 포스코는 매출 76조 4,000억 원, 영업이익 9조 2,000억 원을, 현대제철은
매출 22조 8,000억 원, 영업이익 2조 4,000억
원을 기록하며 철강업계는 상대적으로 높은 실적을 올렸다.
최근 국내
조선업계는 10여 년간의 불황을 극복하고 호황기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과 친환경 선박 발주
증가 기대감으로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번 반덤핑 관세 조치로 인해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나 이제 막 기지개를 켜려는 조선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라며 "이번 관세 부과는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선박 수주 물량 감소, 후판 사용 축소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는
정부의 관세 부과 결정이 조선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후판 가격 안정화를 위한 철강업계와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원가 절감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후속 조치와 철강-조선업계 간 협상 결과가 업계 전반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