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컨테이너선
미국이
자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에 대해 예고했던 높은 수준의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입항 1회당 100만
달러(약 15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가 부과될 경우, 세계 무역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미국산 에너지와 곡물 등의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수수료 수준을 낮출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내 해운 및 조선업계가 예상했던 반사이익 규모도 줄어들 가능성이 점쳐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신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중국 해운사 및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부과 조치와 관련해 해운업계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었다.
앞서 USTR은 지난달 중국 해운사의 선박에 대해 입항 수수료 100만
달러, 중국산 선박에는 150만 달러(약 22억 원)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청회 이후 업계 의견을 반영한 최종안이 확정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해당 조치는 즉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USTR이 중국 해운과 조선업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반영해 수수료 부과를 결정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 해운사뿐만 아니라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글로벌 해운사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계
선사인 코스코, 에버그린뿐만 아니라 CMA-CGM(프랑스), 하팍로이드(독일) 등
유럽 해운사들도 중국산 선박 비중이 높아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CMA-CGM의 루돌프 사디 회장은 이달 초 백악관을 방문해 "미국
국적 선박 확보 및 항만 인프라 투자에 2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조치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HMM과 SM상선 등 국내 해운사들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됐다. HMM이 보유한 82척의 선박 중 중국산 선박은 4척에 불과하며, SM상선도 용선
2척을 제외하면 중국산 배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해운사들이 중국산 선박 대신 한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서도 해당 조치가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해양 영향력을 견제하고 미국 해운·조선업을 보호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의 무역이
중국산 선박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USTR이 추진하는 입항 수수료는 '엔트리피(entry
fee)' 개념으로, 서부 해안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150만 달러씩 부담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중국산 선박의 미국 항만 이용을 막는 강력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 에너지 및 곡물 업계에서는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북미수출곡물협회는 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산 벌크선과 탱커선 건조
능력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정책을 지지한다"면서도 "당장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중국산 선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계약 중인 중국 벌크선사에 입항 수수료 100만 달러가 부과되면, 미국산 곡물의 수출 비용이 부셸당 0.5~1.2달러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산 밀, 옥수수 등의 운송비가 최소 10%에서 최대 30%까지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산 LNG와 원유 수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탱커를 이용해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에너지 물량이 상당한데, 높은 입항 수수료로 인해 물류비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애널리스트 존 맥코운은 "아이오와
농부들의 곡물 수출은 브라질이 대체하고, 텍사스 노동자들의 LNG 수출은
카타르가 대체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같은
반발이 확산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는 미국이 당초 예고한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롤프하벤 얀센 하팍로이드 CEO는 "현재 미국이 제시한 수수료는 전 세계 해운업계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라며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항만 수수료를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입항 1회당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이 아닌, 선박 규모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부과하거나, 전략 품목 수송에 대한 예외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만약 미
당국이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조치 수위를 조정한다면, 예상됐던 국내 해운사 및 조선사의 반사이익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USTR의 발표 이후 일부 유럽 해운사들은 중국 조선소에 발주했던 선박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미 칼을 빼든 만큼 이를 쉽게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형 해운사들은 중국산 선박과 비(非)중국산 선박을 구분해 운용하거나, 자회사 및 셔틀 선박을 활용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최종 조치가
나오기 전까지는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