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스라엘이
최근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면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번 공격은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를 낳고 있으며,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내 해운·조선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선사들은 노선 변경, 보험 조정, 선박 회항 등 비상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며, 조선업계 역시 향후 선박 발주 지형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30%가 지나가는 전략적 해상 요충지로, 폭이 불과 39㎞에 지나지 않아 군사적 긴장에 즉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사태 직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가혹한 응징”을 예고하며 이스라엘을 강력히 규탄했고,
JP모건은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의 일시적 봉쇄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국내 해운사들
중 HMM은 한국·중국·태국에서
출발해 바레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향하는 정기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이 노선은 반드시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해야 하며, 장금상선과 흥아해운도 두바이행 노선에서 동일 구간을 지나고 있다. 팬오션은 중동 국가 전역에 원자재를 운반하는 벌크선을 운영 중이며, SK해운, H라인해운, 현대LNG해운
등도 원유 및 LNG 운송 네트워크를 통해 중동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되면 선박의 안전 확보와 보험료 상승 문제가 본격화될 수 있다”며 “일부 선박은 이미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9년
미국-이란 갈등 당시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전쟁위험 보험료가 3배 이상 급등한 전례가 있으며, 이번 사태 역시 해운 운임과 보험료를
동시에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형 선사에는 일종의 ‘운임
상승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중소 해운사나 포워더들은 비용
부담이 커져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해운업계가
단기적인 비용 리스크를 고려하고 있다면, 조선업계는 보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중동의 물류 공급망이 불안정해질 경우 원유 운반선(VLCC), LNG 운반선, 군수 목적 다목적 수송선(MPP)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조선소에는 일정 부분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조선해양
관계자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배경이지만, 시장은 항상 새로운
수요에 반응하기 마련”이라며 “특히 에너지 안보와 연관된
고사양 탱커, LNG선 수요가 단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LNG선 수요가 급증하며 국내 조선소들이 대형 수주에 성공했던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 나올지 주목된다.
다만 업계
전반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갑작스럽게 등장하지만, 발주·건조·운항 등 해운조선
생태계는 장기계약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금리 부담이 이어지고 있어
조선사들은 단기 수요 확대보다는 중장기 전략 조정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낮은 만큼, 해운과 조선업계 모두 유연하고 장기적인 대응 전략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후티 반군의 공격, 그리고 이번 이스라엘-이란 충돌까지 최근 해상 물류는 지정학 리스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위험이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잡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류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처럼 공급망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에는 단일 항로에 의존하는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며 “대체 항로와 선박 종류의 다변화, 리스크 대응 프로토콜의 상시화가 기업 생존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은 정상적으로 통항 중이나, 업계 전반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해운사는 운항 경로의 탄력적 조정을, 조선업계는 신규 수요 가능성을
가늠하며 전략을 모색 중이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정세 속에서 한국 해운·조선업계의 대응 역량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