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MM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운항 중인 모습. [사진=HMM]
해운업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율운항과
디지털 물류관리 등 첨단 기술이 글로벌 해운 시장의 경쟁 구도로 떠오르면서, 국내 해운업계도 기술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박 운항에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과 수익성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해운사들은 선박 운항과 물류 관리 전반에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가 해운업의
경험 중심 구조를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해운사
가운데 HMM이 가장 적극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HMM은 2030년까지 약 1조 원을 투자해 전사적 디지털 혁신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디지털컨테이너해운협회(DCSA)가 주도하는
전자선하증권(eBL)을 오는 2030년까지 100% 도입할 예정이다. DCSA는 선하증권을 전자화할 경우 연간 65억 달러의 직접 비용을 절감하고, 300억~400억 달러 규모의 무역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HMM은 또 국내 해운업계 최초로 온라인 예약 플랫폼 ‘하이큇(Hi Quote)’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선복(화물 적재 공간) 예약 가능 여부,
운임 견적, 스케줄 확인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과거 전화나 이메일, 영업사원을 통해 진행되던 비효율적인 업무 과정을
디지털화하면서 고객 접근성과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안전관리
분야에도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HMM은 **AI 영상분석 솔루션 ‘딥아이즈(Deep
Eyes)’를 선박에 도입해 영상인식 기능이 탑재된 CCTV로 선내 이상 행동이나 안전사고
가능성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선원이 넘어지거나 위험 구역에 접근할 경우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고, 본사 관제센터에 즉시 알림이 전달된다.
팬오션은
조선사들과 공동으로 자율운항 및 안전관리용 AI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기상 변화나 해상 교통량을
반영해 최적 항로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SM상선은 AI 기반의 연료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해, 항로와 운항 속도에 따른
연료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운항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
국내 해운사들이 AI를 도입하는 이유는 단순한 자동화 때문만은 아니다. 운임 변동성과
연료비 상승, 탄소 배출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위기가 맞물리며 AI를
통한 예측·분석이 해운사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운업은 선장의 경험과 노하우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무역 분쟁, 기상
변화, 항만 혼잡 등 외부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선사인 머스크(Maersk)와 MSC는 이미 선대(船隊) 전체를
연결하는 데이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AI 기반 항로 최적화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 강화도 AI 수요를 더욱 키우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선 연료 효율을 높이고 항로를 최적화해야 하는데,
AI는 이를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제어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다만 국내
해운업계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사를 제외하면 중소 해운사는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도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며 “초기 비용 부담과 전문 인력 부족이 주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중소 해운사들은
선박 운항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시스템이 미흡해 AI 도입을 위한 기반 마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지원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해운 경쟁의 핵심은 선복량이 아니라 데이터와 AI 기술력
확보가 될 것”이라며 “AI는 단기적으로 투자비 부담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연료비 절감과 운항 효율 개선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AI는 해운업의 운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기술 표준화와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AI 기술의 확산으로 해운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선박 운항부터
물류 관리, 안전 시스템까지 AI가 도입되는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느냐가 향후 해운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