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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인물 故 정해춘님

2015년「해기사 명예의 전당」헌정인물 확정 前 목포해양고 교장 故 정해춘님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선정위원회 (위원장 임재택, 이하 ‘선정위’)는 2015년 3월 5일 오후 2시 한국해기사협회 회의실에서 2015년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인물 선정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선정위는 추천된 총 2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개개인의 다양한 경력과 공적을 심도 있게 논 의하였으며, 그 결과 故 정해춘님을 만장일치로 확정하였다.

 이날 회의에는 임재택 한국해기사협회장을 비롯해 진해고등해원양성소 동문회 김윤택 회장,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김영소 선원해사안전과장,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오신기 이사장,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염경두 위원장, 한국해양대학교 이은방 해사대학장 등 11명이 참석하였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해운발전의 초석이 된 해기사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해기 선원직업의 매력화 등을 위해 부산 태종대 공원 내(영도 등대 부근) 1,336㎡ 부지에 2009년 3월 6일에 설립되었으며, 2015년 현재까지 신성모, 이시형, 박옥규, 황부길, 신순성, 유항렬, 이재송, 윤상송, 석두옥, 김재곤님 등 총 10명을 헌정한 바 있다.

 한편 올해 헌정식은 오는 5월 31일 「바다의 날」을 즈음하여 개최할 예정이다.



---------{  2015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인물 “정해춘(丁海春)”  }---------




- 1934년  : 교통국 진해고등해원양성소 기관과 졸업

- 1938년 2월 : 교통국 진해고등해원양성소 연습과 수료
   (갑종 기관사 면장 취득)
- 1938년 8월 : 조선우선(주) 기관사 근무
- 1941년 1월 : 만주해운(주) 기관사 근무
- 1946년 3월 : 대한기선공사 기관사 근무
- 1947년 12월 : 조선해양대학(군산) 기관학과 교수 근무
- 1953년 4월 : 목포수산상선고등학교 교감 근무
- 1956년 1월 : 대한해운공사 기관장(남해호) 근무
   (갑종 기관장 면장 21호)
- 1960년 8월 : 목포해양고등학교 교장 취임
- 1978년 8월 31일 : 대통령 표창장 수상(총무처)


해양산업계의 발전에 기여한 사항 :
 1913년 3월 16일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교통국 고등해원양성소 본과와 연습과를 졸업하여 갑종2등 기관사 면허장(면허번호 제71호)을 취득하였고, 조선우선(주)에 입사하여 기관사로 근무하였다.
 1941년 1월부터 1945년 9월까지 만주해운(주)에서 기관사로 근무하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부산항 내에 계류 중인 미 원조선단을 인수하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LST형과 BOLTIC형 8척을 인수하기 위해 해기사를 모집하였으나, 한국에는 중진 해기사가 없다며 미군은 일본인 해기사를 대기한 상황이지만 이를 막아내고 선박 인수 기관장을 겸하며 국내 중견 해기사를 모집하여 우리의 힘으로 인수 작업을 무사히 수행하였다.
 그 후 군산으로 옮긴 조선해양대학 기관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재직기간 학생들에게 명강의로 명성을 얻었으며, 「MARINE AJAX ENGINE의 VALVE GEAR AND VALVE MOTION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해양대학 『바다』지 제1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란하자 그해 7월 15일 교수직을 사임하고 1953년 4월 목포 유지들의 초청으로 목포상선고등학교(현재 목포해양대학교 전신) 교감으로 1955년 말까지 재직했다.
 1956년 1월부터 대한해운공사 소속선 기관사 및 기관장으로 1960년 7월까지 해상근무를 하였고, 1960년 8월 다시 목포해양고등학교 교장으로 초빙되어 1963년 9월까지 재임했다.
 목포해양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중 5.16 쿠데타를 맞고 군사정권으로 인해 文管行(1963년 1월 29일자) 및 文學管 9389호(1962년 12월 31일자)에 의해 폐교 및 학생모집 중지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木浦海高 1041号’ 공문으로 목포해양고등학교의 존속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학생모집을 단행하고 종전과 같이 학교운영을 계속하였으며, 당국의 별다른 조치 없이 목포해양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해기인력 양성 교육을 지속할 수 있었다.목포해양고등학교 존속과 현재의 국립목포해양대학교로 발전하기 위한 초석 마련은 물론 해운 초창기의 해운발전과 후배양성에 크게 기여한 족적을 남겼다.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8월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하였고, 2011년 8월 29일 향년 99세로 영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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