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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587년의 울산항, 오랜 역사 바탕으로 성장 도약 발판 마련

 

[쉬퍼스저널 이영종 기자]

염포의 개항

울산항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426년 울산만의 항구인 염포가 개항했다. 일본과의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울산항은 국제무역항으로의 역사가 시작됐다. 염포는 세종이 부산포, 내이포와 더불어 일본에게 개방한 3개 항구(3포)의 하나로 조선의 대일 관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항하는 일본선박과 남해안에 정착한 일본인이 증가하자 조선에서는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다. 경상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한 곳으로 안치하는데 이곳이 바로 염포였다. 조선정부에서는 염포에 만호진을 설치하고 군사를 주둔시켰다. 대일무역항으로 개항된 염포는 울산만의 염포 만호진 옆에 위치해 있었다. 수군이 주둔한 개운포와 서생포가 염포와 부산포 사이에 있고, 육지에는 병영이 있어 감시와 통제가 용이했다. 염포가 대일 무역항으로 지정된 데에는 이러한 이점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염포의 위치와 시설은 해동제국기의 울산염포지도에 잘 나와있다.

근대의 울산항

동해는 대형 고래의 서식지였고, 선사시대 울산의 거주민에게 고래는 주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울산 앞바다를 회유한 고래의 종류와 선사인들의 고래잡이는 반구대 암각화에 생동감있게 새겨져있다. 울산 해안가는 수심이 깊어 큰 배가 바로 접안할 수 있기에 고래를 하역하고 해체하는데 유리한 지형이다. 이로 인해 장생포만은 한반도 최대의 포경기지가 설치됐다. 포경기지가 설치된 이래 장생포는 한반도 포경의 중심지가 됐으며 고래잡이는 장생포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됐다. 포경업이 발달하면서 장생포도 따라 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울산 공업항 건설 계획

울산이 지금처럼 산업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는 바로 1930년 후반이다. 이 당시 울산항을 공업항과 공업도시로 개발하고자 하는 새로운 계획들이 등장했다. 한반도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동쪽 임해지역에 위치한 울산의 뛰어난 입지 조건에 주목한 결과였다. 구체적으로도 축항사업을 통해 염포 일대를 공업항으로 개발하고, 이 울산항과 일본 야마구치 현을 연결하는 항로를 신설하며, 대현면과 하상면 일대를 중요 공업시설이 집중된 공업지대로 개발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대한 계획은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일제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으로 인해 중단됐다.

그러나 당시에 수립된 울산항 건설 및 공업도시 개발 계획은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건설의 의미있는 배경이 됐다. 입지 조건을 고려해 기획된 기존 계획의 존재가 울산 공업화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제 말기에 확보한 광대한 국유지를 그대로 공업용지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조건이었다.

울산의 공업화와 울산항 개발

울산항의 건설과 발전은 1962년부터 추진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공업투자와 더불어 도로나 교량, 용수 같은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이 시기에 부분적이긴 하지만 울산항만 축조공사도 시작됐다. 그러나 항만 건설은 공장 건설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기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됐다. 울산항의 건설과 발전은 시기별 경제개발 계획, 구체적으로는 울산공업지구의 건설 계획에 의거해서 추진됐기 때문에 이는 울산공단의 발전과정, 한국 경제의 성장과정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1960년대 이후 울산항은 한국 경제성장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며 공업항에서 산업항으로 다시 무역항으로 변화하고 발전했다.

무역항으로의 위상 강화

1980년대에 접어들어 국가 전체 차원에서 수출 화물의 수송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국내 화물 수송 확대 또한 중요한 과제로 부각됐다. 따라서 이 시기 항만개발은 증가한 수출 화물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주요 항만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 신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신항만을 건설하는 것에 중점이 놓여 있었다. 또한 국가 에너지 수급 계획에 따라 대형 석탄부두를 건설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엿다. 국내 수송과 관련해서는 연안 수송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안 화물부두의 확장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국가적 정책 기조의 영향 아래 울산항에 대해서도 항만시설 확장과 부두 신설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전국적으로 화물의 수송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울산항은 수송수요의 절대량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항만에서 점유하는 상대적 비중까지 지속적으로 높아져 확장 요구가 더욱 컸다. 울산항의 선박 입출항 비중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으며 1990년대에 접어들어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1992년 시점에서 울산항의 전국 대비 비중은 입항 척수로는 10.8%, 톤수로는 19.4%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울산항은 울산지역에 조성되어 있는 산업을 지원하는 항만의 역할을 넘어 국제무역항의 위상을 더욱 강화해갔다. 국제화의 비약적 진전과 수출입 화물의 수송 증가로 컨테이너 등의 항만 수요가 꾸준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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