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외국학교와 같은 커리큘럼과 시스템에 따라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만나 본 학생들은 이런 시스템에도 만족하고 있었지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점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주도형 학습법이었다.학생들 대부분은 한국 학교의 주입식 교육에 지쳐 있다가 편입한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루 7시간이 넘는 수업을 받고 학원으로 이동해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는 환경에서 자신감을 갖기는 커녕 자기가 왜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고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한국에서 가장 교육여건이 우수(?)하다는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부한 한 학생은 5년 동안 버텼지만 도저히 그런 환경에 맞출 수 없겠다고 판단해 부모님에게 진지하게 말씀드리고 국제학교로의 편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역시 자기 진로와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한 교육방식이 좋았다고 말한다.또한 많은 학생들이 ‘방과후 수업’이 아닌 ‘방과후 활동’에 크게 만족감을 표했다. 한국 학교에 다닐 때는 형식적인 행사에 그쳤던 방과후 활
필름 시절 사진기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몇 컷 쓸 건데? 그랬다. 한 컷 한 컷이 돈이고 다 회사 경비인지라 당연한 일이었다. 꼭 필요한 컷에 한 두 컷 여유 컷만 찍어줬다. 지면 구성을 미리 해서 컷 수와 사이즈 등을 계획해 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었지만 후에 사진을 고르는 수고도 없어서 나름 편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사진들 관리하는 게 큰 일이 되어 버렸다.그래도 전문가가 찍으면 개념이 있어서 적당히 고르고 분류해서 준다. 그러나 업체의 비전문가가 관련사진을 찍어서 주는 경우 몇 기가 혹은 수십 기가 씩 하는 파일 뭉텅이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회한 노트북에게는 거의 폭탄 수준이다. 내려받는데 한 세월 그걸 일일히 분류하는데 또 한 세월. 조그만 노트북은 거의 마비가 되어 다른 일을 못할 지경이다. 게다가 고르고 골랐는데 정작 쓸만한 사진은 없는 완전 난감한 사태도 종종 벌어진다.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만 열심히 충실할 뿐 ‘어떤 사진을’ ‘왜 찍는가’에 대한 사고가 결여되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후배 에디터들에게 어려운 촬영이 아니면 스스로 직접 찍는 버릇을 들이라고 권하곤 한다. 자기가 직접 찍으
1960년대 미국에 헨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간질환자였다. 병원에서는 그의 간질을 고치기 위해 뇌 속의 해마세포를 빨아냈다. 간질은 나아졌는데 그만 기억이 몽땅 날아갔다. 당시까지는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대외피질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수술 후 헨리는 아무런 기억도 못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게 통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을 때 기억을 잃은 사람은 과연 그 이전의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게다가 혹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의 기억이 뇌 속에 대신 채워진다면?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이런 설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어쩌면 인간의 뇌는 기억이 전부다. 치매라는 것도 생리적인 무의식적인 작용으로, 원초적으로 포맷되어 있던 디폴트 상태로 의식이 돌아가는 거 아닐까. 불교에서 의식적으로 세속에서의 기억과 인연을 버리고 무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과 어느 면에서는 맥이 통할지도 모르겠다.좀 다른 얘기지만, 만약 약물이나 최면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의 안 좋은 기억을 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