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대표적인 항구인 인천항은 1883년, 부산, 원산에 이어 조선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항구이다. 당시 제물포항으로 불렸던 인천항은 상업항보다는 조선 유일의 군사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외국 세력의 잦은 통상 압력과 무력시위로 인천항은 상처투성이 조선 역사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렸다.일제시대를 거쳐 해방된 후 인천항이 현재의 항만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4년 무렵부터였다. 당시 149억원이라는 거액의 공사비를 투입해 인천항은 현대적 의미의 항구로 재탄생했다. 이후 인천항이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된 계기는 2005년 인천항만공사 출범하면서 부터였다. 인천항만공사 출범과 함께 인천항이 정부운영체제에서 벗어나 민간 자율경영 시대를 맞은 지 10여년이 흘렀다. 인천항만공사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제2의 도약을 다짐했다. 지난 7월 9일 창립 10주년 기념사에서 유창근 인천항만공사 사장은 “인천항만공사의 미션인 환황해권 물류중심항, 동북아 대표 해양관광 메카 실현을 통해 인천항을 화물과 여객, 물류와 관광, 비즈니스가 조화를 이룬 초일류 항만으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말했다.지난 10여년 동안 인천항만
요즘 그리스가 연일 국제뉴스의 핵심으로 보도되고 있다. 서양 문명의 뿌리가 있는 곳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지이기도 한 유서깊은 나라가 애석하게도 ‘국가부도’라는 치욕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국제 채권단이 권유한 긴축재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지만 긴축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하게 꼬이고 있다.머나 먼 유럽의 일이라고 그리스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는 없다. 그리스사태가 악화되면 유럽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고 그 파장은 우리나라에도 직간접적으로 퍼질 수 있다. 그리스와 교역하고 있는 많은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지만 특히 국내 선박업계는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그리스사태를 바라보고 있다.한국의 대 그리스 교역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라 치명적인 타격은 없다는 전망이지만, 수출의 86%를 차지하는 선박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현재 그리스로 수출되는 선박들은 세금 감면과 기타 편의를 위해 파나마 등 다른 국가에 등록을 하는 ‘편의치적’ 형식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그리스에 대한 수출감소는 덜하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국내 선박업계들에게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국민일보
지난 6월 30일 국제해사기구(Internatilnal Maritime Organization, 이하 IMO) 사무총장 선거에서 부산항만공사 임기택 사장이 선출됐다. 임 사장은 한국해양대학과 해군장교를 거쳐 30여년 이상 해양 항만 분야에서 외길을 걸어 온 인물이다. 또한 주 영국대사관 참사관과 해사안전정책관 등 국제 네트워크에서 쌓아온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이번 선거에서 쾌거를 이루었다고 보도진은 전한다.IMO는 국제무역에 관여하는 선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기술적 문제와 관련되는 정부 규제 및 실행 분야에서 각국 정부가 협력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이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으며 총회와 이사회, 위원회,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3월 기준 170개국이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54개 국제정부기구와 75개국제비정부기구와 협력하고 있다.한국은 1962년 4월 정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1991년부터 이사국으로 활동해 왔다. IMO 임기택 차기 사무총장의 임기는 내년 2016년 1월 1일부터 4년간이며 1회 연임이 가능하다.그동안 임기택 사장은 IMO 외교단장과 협약준수전문위원회 의장 등을 지내면서 IMO와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
지난 2003년 개봉한 일본영화 춤추는 대수사선 - 레인보우브릿지를 봉쇄하라는 관객 2천만명 이상을 동원한 공전의 빅히트작이었다. 영화에는 레인보우브릿지를 비롯해 관광명소가 된 도쿄 오다이바 일대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도쿄만 일대가 관광지가 되면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영화에는 레인보우브릿지 뿐만아니라 도쿄만 인근의 주요 명소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는 일본의 주요 거점항구 중 하나인 도쿄항이 있다. 춤추는 대수사선에 자세한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도쿄항은 현재 일본의 컨테이너 물량 다수를 싣고 내리고 있는 중요한 시설일 뿐더러 레인보우브릿지를 포함한 오다이바 인근 관광지의 사실상 중심지인 곳이다.도쿄항의 근세 역사는 1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막부시대 말기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도코항으로 와서 일본에 무력으로 통상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좌충우돌하던 막부와 도막파의 내분이 거세어지고 급기야 1867년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도쿄항은 일본 근대화의 역사적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도쿄항은
강원도 해안 휴전선 일대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거진항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과거 80~90년대에만 해도 거진항에 가서 1만원만 주면 장정 서 너명이 충분히 먹을만한 횟감을 썰어주곤 했다. 오징어철인 6~7월 무렵에는 싱싱한 산오징어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휴가나온 장병들에게는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 한잔이 천상의 맛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요즘 거진항에 가보면 그런 후한 인심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항구 주변의 횟집에 들어가면 서울 등 도심 횟집 가격과 별 차이가 없다. 항구 좌판에 앉아 저렴한 값에 싱싱한 오징어를 풍성하게 먹는 일은 이제 거진항에서 추억이 되어 버렸다.인심좋고 후덕한 강원도 사람들이 돈 맛을 알고 인심이 사나와져서 그럴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방도 도심의 소비문화권으로 통합이 되면서 돈이 중요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주민들이 돈에 집착해서 횟값이 비싸진 것은 아니다. 항구에서 먹는 저렴한 산오징어가 추억이 된 것은 거진항의 오징어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오징어는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이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부터 난류를 타고 동해를 거쳐 오오츠크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명나라 영락제 시기인 1405년 길이 44장(약 130m)에 이르는 대형 선박을 포함한 62척의 함선들이 소주를 떠나 남방으로 항해를 떠났다. 승무원이 2만 7천여명에 달했다니 하나의 도시가 움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함대의 총 사령관은 정화. 고위급 환관이었던 그의 나이 34세 때 일이었다. 정화는 원래 중국 남부 윈난성 이슬람교도 집안 출신이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윈난성을 공격할 때 어린 정화는 명군에게 붙잡혀 환관이 됐다고 한다. 이후 영락제에 등극한 후 환관고위직인 태감이 되었고 그의 특명에 따라 정화함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아랍,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했다. 정화의 함대는 한차례가 아니라 무려 7차에 걸쳐 남방원정에 나섰다. 정화는 34세부터 죽을 때까지 30여년의 인생 전체를 항해를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수차례에 이르는 이 엄청난 규모의 원정은 왜 시작을 했을까.원정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주원장의 손자인 건문제의 왕위를 찬탈한 영락제가 남방으로 탈출한 건문제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아랍 및 티무르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리버풀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틀스(Beatles)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록음악의 시대를 연 비틀스는 확실히 리버풀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비틀스 음악에 등장하는 애비로드, 처음으로 연주를 했던 캐번클럽 그리고 존 레논 공항 등 비틀스와 관련한 장소들은 리버풀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축구를 좋아하는 젊은층들은 리버풀FC, 에버턴FC 등 축구팀을 리버풀의 상징으로 여긴다. 리버풀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전통적으로 유래가 깊다. 특히 리버풀FC는 80년대 최고의 팀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리버풀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반면 축구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압사 사고까지 이어진 훌리건들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곳도 리버풀이었다.리버풀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여객철도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여객열차가 처음으로 개통이 되어 여러 명사들이 이 철도를 이용했고 이후 여객열차와 우편열차들이 영국 각지에서 운행되기 시작했다.그밖에도 리버풀에는 유명한 상징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리버풀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리버풀 항구이다. 리버풀이 최초 여객기차의 종착역이 된 것도 유명한 항구가 있었
블라디보스토크, 이 멋진 이름은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가졌다. 대단한 의미의 그 뜻처럼 블라디보스토크는 예로부터 러시아의 극동 전진기지이자 중요한 항구였다. 현재도 러시아 극공함대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자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항로의 요충지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철도 요충지이기도 한데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반도 땅 북쪽에 위치한 연해주에 위치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도 유명하다.지금은 관광지역화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예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다.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이어진 시기에는 군사요새화되어서 외국인은 물론 러시아 내국인들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었다. 1860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서 베이징조약이 체결된 이후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되자 생활고에 쫓긴 조선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고려인’이라 불리면서 한민족 이민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다. 일제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한 연해주 인근이 토벌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얼어붙어있던 시기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이러닉하게 자유분방한 열기가 넘쳐났다. 유럽문화의 끝자락과
대한민국에 ‘조도’라는 섬은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부산에도 있고 남해에도 있고 속초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조도스러운 조도는 전남 진도에 딸린 조도라고 할 수 있다. 15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조도군도’이다.다른 조도들처럼 鳥島라고 쓰는데 한 마리 새가 아니라 ‘새떼’라는 의미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하조도이고 그 위에 상조도가 있다. 하조도와 상조도는 조도대교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조도훼리호를 타고 30여분 들어가면 하조도 어류포항에 닿는다.여느 여객선처럼 조도훼리호에도 자동차를 타고 탑승할 수 있다. 같은 조도이지만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조도와 그냥 걸어들어가는 조도는 사뭇 다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조도의 명물인 도리산 전망대 뿐만아니라 섬 곳곳을 빠르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반면 많은 것들들 놓칠 수 있고 섬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면이 있다.걸어서 항구에 내리면 우선 바삐 승용차들을 빼내는 부산스러움 대신 한적한 풍경과 일렁이는 상쾌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마을버스 혹은 도보로 섬을 다니면 많은 곳을 볼 수는 없지만 조도의 역사를 간직한 땅을 밟으며 맑은
경기도와 평택항만공사는 올해 3월 독일 브레멘주, 브레멘항만공사와 자동차 물류산업 확대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했다. 이 협약을 통해 경기도와 브레멘주는 자동차 물류를 넘어서 관련 분야에서도 점진적으로 지속적인 협력을 이루어나갈 전망이다.평택항은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및 수입을 처리하는 대표적인 항구다. 2010년부터 자동차 수출입 전국 1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 처리량은 1천만대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505,780대의 자동차를 수출입했다.평택항이 한국의 자동차 물류를 대표한다면 브레멘항은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중점 항만이라 할 수 있다. 규모는 독일 최대인 함부르크항보다 작지만 자동차 분야에 있어서는 독일 뿐만아니라 유럽 최대를 자랑하는 자동차 메카이다. 2012년에만 200만대가 넘는 독일 자동차들이 브레멘항을 거쳐 세계 각지로 수출됐다.그런데 브레멘항을 세계적 명소로 만든 것은 자동차 물량 때문만이 아니다. 브레멘항은 친환경 항만으로도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브레멘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린포트(green ports) 페이지가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레멘항이 지향하는 그린포트의 비전은 ’경제와 생태
예전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차를 몰고 서울 동작대교를 지나다가 와이퍼가 고장나는 사고를 당했다. 와이퍼가 고장나는 게 무슨 사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와이퍼가 작동 안될 때의 그 공포감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적어도 사고에 준하는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비상등을 켜고 서행을 해도 시야가 흐려서 불안한데다 혹시 뒤 차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달리다 추돌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까지 더해져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다리를 건너 자동차정비소가 있는 곳까지 불과 수 킬로미터를 운전해 오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뽑은 지 얼마 안되는 새 차였다. 화가 나서 자동차 회사에 전화를 해 사정 설명을 했더니 “그럴 리가 없는데요” 하다가 재차 항의하자 “어쩌다 그럴 수 있지만 극소수 경우”라고 변명을 했다. 전화 통화한 후 더 불쾌해졌다. 리콜이나 보상금을 바래서가 아니라 적어도 자동차회사 직원이 달려와서 점검을 하고 사과를 했어야 옳은데 그저 극소수의 경미한 결함으로 여기고 넘어간 것이다. 만약 달리다 바퀴가 빠졌어도 그렇게 대응을 했을까?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이지만 그 사고 이후 그 회사에 불신감을 가지게 됐고 그 회사 자동차
산이 있고 꽃이 있는 목포가 지금의 항구가 된 것은 1897년 10월 1일부터였다. 일제시대 들어서면서 날로 번창하기 시작해 1930년대 초 무렵에는 8.6 km2 넓이에 무려 인구가 6만여명으로 불어나 한반도 전체에서 6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김과 면화, 쌀, 소금의 최대 집산지여서 ‘일흑삼백(一黑三白)’의 항구로 불리기도 했다. 고 이난영 여사의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가 발표된 시기도 1930~40년대 목포가 항구로 전성기를 누릴 때였다.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1935년 목포 출신의 걸출한 가수 이난영과 함께 이 노래는 순신간에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목포는 항구로 날로 번창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노래에 배어 있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일본어로도 취입되어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데 당시 가사 중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대목이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년 원안풍은 노적봉”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가사로 불렸던 일화도 있다.목포의 눈물에 이어 목포를 전국적으로 알린 노래 제2탄이 1942년 발표된 목포는 항구다이다. 이 노래의 대히트 이후 목포가 항구란 사실은 어린아이들도 알게 될 정도였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목포는
자본주의가 성숙화되고 다변화됨에 따라 기존처럼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추세에서 벗어나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인데 사회적 목적을 우선 추구하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정부에서는 이런 사회적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적기업육성법’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통해 여러가지 진흥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은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요즘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중요시하는 추세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은 보다 구체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주된 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전문화되고 성숙한 기업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 사회서비스 제공, 사업을 통한 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봄은 수많은 시인, 예술가들의 노래 주제이자 사랑의 대상이었다. 어디 시인과 예술가들뿐이랴. 한 떨기 들꽃만 봐도 설레는 청춘들에서부터 수 없이 많은 봄을 맞았던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뭇 선남선녀들에게 봄은 늘 반가운 손님이다.봄을 알리는 상징은 산에 들에 그리고 앞마당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이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비로소 봄을 느끼고 한 해를 시작하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늘 해마다 겪는 일이면서도 ‘어떤 꽃이 언제 피는가’는 여전히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된다. 수 많은 꽃 중에서 봄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은 아무래도 벚꽃이다.기상청 홈페이지에서는 벚꽃의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벚꽃 개화시기 서비스가 시작될 즈음 기상청은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기도 한다. 기상청이 발표한 벚꽃의 올해 개화시기는 서울 기준으로 볼 때 4월 9일이다. 벚꽃이 가장 빨리 피는 서귀포와 비교해 보면 무려 열흘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개화시기의 기준은 무엇일까.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인 4월 6일 서울 북한산 앞자락 야산에도 이미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렇
지난3월 23일 리콴유(李光耀, 1923~2015) 싱가포르 전 총리가 타계했다. 향년 91세. 리콴유가 누구인가. 싱가포르를 오늘의 싱가포르로 만든 사람으로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으로부터 ‘시대가 만든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만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키신저 뿐만아니라 그는 서방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경의를 표했던 드문 동양인이었다. 자원이라곤 거의 없다시피한 서울시만한 조그마한 항구도시를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런 찬사와 존경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리콴유의 통치철학은 엄격한 법치주의와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실용주의로 요약된다. 엄격한 법 집행과 처벌은 담배꽁초나 껌 하나 버려도 부과되는 벌금에서부터 고위층의 부정부패 척결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적용됐다. 그러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리콴유는 서방의 한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만나 본 미국 대통령 중 최악으로 지미 카터를 꼽았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극해야 하는 리더가 고작 미국인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는 연설이나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그는 늘 자신만만한 자세로 국민들을 이끌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을 수행했다.그가 추구한 실용주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