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에 헨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간질환자였다. 병원에서는 그의 간질을 고치기 위해 뇌 속의 해마세포를 빨아냈다. 간질은 나아졌는데 그만 기억이 몽땅 날아갔다. 당시까지는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대외피질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수술 후 헨리는 아무런 기억도 못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게 통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을 때 기억을 잃은 사람은 과연 그 이전의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게다가 혹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의 기억이 뇌 속에 대신 채워진다면?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이런 설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어쩌면 인간의 뇌는 기억이 전부다. 치매라는 것도 생리적인 무의식적인 작용으로, 원초적으로 포맷되어 있던 디폴트 상태로 의식이 돌아가는 거 아닐까. 불교에서 의식적으로 세속에서의 기억과 인연을 버리고 무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과 어느 면에서는 맥이 통할지도 모르겠다.좀 다른 얘기지만, 만약 약물이나 최면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의 안 좋은 기억을 지우
가을은 숲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의 유명 산들은 단풍놀이 온 사람들로 법석거린다. 그러나 아름다운 단풍 구경만 하고 숲을 떠난다면 매우 애석한 일이다. 숲은 그 아름다움 못지않게 위대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가을이 성큼 다가 온 날 경북 문경에 위치한 국립대야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아직 절정에 이르진 않았지만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숲을 예쁘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 눈에는 아름다운 오색 향연이지만 나무들 입장에서는 분주하게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름동안 양분을 받아들인 잎들이 기능을 다 하면 나무는 잎을 변색시키며 떨궈 버린다. 날이 더 추워지면 앙상한 가지들로만 겨울을 난다. 죽은 것 같지만 다음 해 봄 새순을 틔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숲은 이런 자연의 위대한 순환을 태고적부터 이어오고 있다. 대야산에서 만난 숲해설가는 그래서 숲은 인간에게 ‘원천적 고향이자 어머니의 품’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숲해설가를 하기 이전부터 조물주는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왜 병이 들었을 때 치유방법은 쉽고 간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고 한다. 혹시 간편한 치유방법이 있는데 인간들이 그걸 깨닫지 못하
예전에 편집 단순작업에 급히 손길이 필요해서 거래처 건물 관리하시는 분들 방에 간 적이 있다. 아주머니(할머니이신 분들도 많다) 세 분이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서 6시까지 출근을 하고 사무실 직원들의 출근 시간인 9시까지 건물 청소를 마쳐 놓는다. 9시부터는 휴식을 취하고 조그만 방에서 점심을 해 드신 후 다시 3시까지 오후 청소를 하시고 퇴근한다. 연세에 비해서 고된 일정인데 이 분들은 노동을 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직장이 있으니 참 행운이라고 말하시며 긍정적으로 일 하신다.같은 건물에는 아주머니들 외에 아저씨들(이 분들 역시 대부분 70대 분들이라 할아버지가 맞다) 세 분이 계신다. 아저씨들은 경비 제복을 입고 현관 앞을 지키며 지상, 지하 주차장과 보안업무를 담당하신다. 아저씨들은 청소는 안 하지만 세 분이서 3교대로 24시간 근무를 하신다. 연로한 남성분들은 청소는 안 하지만 12시간 씩 교대를 하며 주 야간으로 건물을 경비하고 관리한다. 역시 연세에 비해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이분들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하신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때때로 알력을 빚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동료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해 줄 때가 더 많
결혼 시즌이다보니 주말엔 결혼식장에 자주 가게 된다. 결혼식장 하객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바인데 세속어로 골드미스라고 표현하는, 훌륭한 싱글 여성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인물, 직업, 경제력, 성격 다 좋은데 단지 나이가 좀 많다는 이유로 결혼시장에서 마이너로 분류되곤 한다. 이른바 ‘적령기’라는 개념이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특히 여자들에게 강력한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본인 의지에 따라 결혼을 안 한 것이면 얘기가 다르지만 사회생활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때’를 놓쳤다는 것인데 이 ‘때’에 대해서 다시금 사회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막말로 남자들은 ‘때’를 놓쳐도 돈이 많으면 돈으로 나이 많은 핸디캡을 커버할 수 있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게 쉽지 않다. 연하를 선호하는 남자들 성향도 큰 이유겠지만 아주 당연하게 여자의 나이를 중요한 경쟁력으로 꼽아 상품성의 척도로 삼는 한국 결혼시장에도 문제가 많다고 본다.예전에 나이가 좀 있는 지인 여성이 용기를 내어 결혼정보업체에 상담을 신청했다고 한다. 업체 쪽에서는 나이가 많아 초혼 쪽은 무리이니 재혼 쪽으로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내가 이혼한 사람도 아닌데 왜 재혼 상대를 알아봐야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작은미래’전에는 텃밭을 주제로 한 독특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텃밭을 일구는 텃밭지기이자 미술가인 이경래 작가가 만든 ‘아담스 가든(2014 Adam's Garden 2014)’이다. 이경래 작가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 생산활동이자 공존의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텃밭을 일구는 예술가다.생명 소비의 양이 극대화된 도시에서 소비를 줄이고, 생명 생산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텃밭을 가꾸고 또한 예술작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실천을 위해 실내 대안텃밭을 만들어 식물드로잉이라는 방식으로 상추나 깻잎, 고추 등을 키우고 있다. 시각적 조화와 기능의 효율성을 통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존을 위한 작은 시작임을 그는 예술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아담스 가든의 주요 컨셉은 ‘소비 중심의 삭막한 도시에 생산의 공간을 가져오기’이다. 소비의 산물이자 증표인 영수증들로 소비도시를 표현했다. 영수증으로 사용되는 종이는 감열지다. 작가는 스스로의 생활을 체크하기 위해 몇년간 모았던 영수증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영수증들에 다리미를 이용해 열로 그림을 그려 도시를 만들었다.텃밭을 이용해서는 작은
미항으로 유명한 여수에 가면 하멜등대가 있다. 빨간색 예쁜 등대는 해양도시 여수의 낭만적 랜드마크처럼 되어있는데 그 주인공인 하멜의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했다. 낭만은 커녕 조선땅에서 그의 인생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하멜은 야심찬 모험가나 선원이 아니라 그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서기였다. 자잘한 돈 관리를 했던 것 같은데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다.1653년 하멜 일행이 최초로 제주도에 표류했을 당시 제주목사는 꽤나 너그러웠는데 새로 부임한 목사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고생 깨나 했다고 한다. 하멜 일행의 본격적인 고생은 한양으로 압송되면서부터 시작됐다.당시 조선은 표류한 외국인을 제 나라로 보내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조선이 다른 나라 특히 서양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렸기 때문이다. 하멜의 선배 벨테브레 역시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이었는데 박연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조선에 귀화해 조선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하멜은 박연과 몇 번 대면을 했지만 조선에 귀화하기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조선에선 그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조선 왕이었던 효종은 강력한 북벌정책을 펴
난 평소에 그다지 바쁠 게 없는 사람이라 KTX를 탈 일이 거의 없다. 서울서 대구까지 두 시간에 가야할 이유가 전혀 없고 너댓시간 동안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면서 가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느긋하게 가려면 미리 바쁘게 서둘러야 한다. 새마을이나 무궁화가 KTX보다 오히려 귀해서 서둘러 예매하지 않으면 좌석이 없기 때문이다.아이러니하지만 느긋한 열차여행을 즐기기 위해 서둘러 좌석을 예매해 무궁화에 올랐다. 장시간 기차여행의 백미는 역시 식당칸의 식사시간. 그런데 미리 도시락을 예약하지 않으면 도시락을 사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락도 미리 서둘러 예매를 해 뒀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칸으로 갔다. 식당이 아니라 무슨 카페라고 적혀 있는데 카페라기 보단 음, 무슨 피난 열차칸 같았다. 예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온 사람으로부터 중국에는 좌석 자체가 없는 그냥 컨테이너같은 기차칸이 있다고 들었는데 뭐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식탁 좌석은 물론 오락기계 자리까지 사람들이 다 차지해 앉아 자고 있고 테이블 밑에까지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래서야 달리는 열차에서 창밖을 보며 도시락에 맥주를 한잔한다는 낭만
해마다 명절이면 늘 느끼는 바이지만, 일 년에 두 번씩 결혼한 여자들이 남편 집에 가서 일을 하고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이 풍속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이 될 지 사뭇 궁금하다. 남자 집안의 윗대 며느리인 시어머니가 차례 상을 준비하고 그 아래 며느리들이 보조 및 설거지를 하는 편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시어머니들도 젊은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과도한 일을 시키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도 젊은 여자들 입장에서 시댁에서 쇠는 명절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남자들 역시 명절이 마냥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젊은 남편들은 시댁에 와서 일하는 아내를 위해서 알아서 눈치껏 거들고, 아내 앞에게 권위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버티는 중년층들조차도 요즘은 명절 앞뒤로 아내 눈치를 꽤 살핀다고 한다. 오랜 시간 가부장의 권위로 살아 온 어르신들도 옛날식의 전통 제사를 고집할 수 없고 사회적 분위기 상 간소한 차례 상에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추세다.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남편의 권위, 남존여비 사상은 이미 많이 사라졌는데 관습이 그러니까 그저 시늉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 년에 두 번 관습에 따라 의식처럼 며느리 행세를 해야 하고 남편들은 눈치보
포털에서 측백나무를 검색하면 인터넷 쇼핑몰이 먼저 뜨고 측백나무효능이 따라붙는다. 나무라기 보다는 그저 약재로 통용되는 것이다. 효능이 거의 만병통치에 가깝게 많은데 요즘은 탈모예방과 발모촉진으로 뜨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측백나무는 인간들 명줄 늘려주고 머리털이나 증식시켜주자고 존재하는 나무가 아니다.측백나무는 온갖 보양식 챙겨먹고 살아야 고작 100년인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산다. 좋은 것 먹고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절벽 바위틈 흙 한줌 제대로 없는 벼랑에서 수백년을 살아온 나무도 있다. 한국 자생 측백나무는 그 동안 인간들한테 숱하게 베어져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경북 영양과 충북 단양 등 몇 군데 없는데 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인 한국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림이다. 측백나무는 요즘 공원이나 주택단지 등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들 조경용 측백은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들이다. 한국 원산의 측백나무 숲은 대구를 비롯해 경북 영양, 충북 단양 등에서 자생하고 있다.대구 도동 측백나무림은 예로부터 대구에서 영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나그네들에게 맞춤한 쉼터가 되곤 했다고
옥수수가 한창 수확되어 유통되는 철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이 조그만 텃밭에서 소규모로 옥수수를 경작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땅 전체가 옥수수밭인 경우가 많다. 광활한 옥수수밭은 종종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그 중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9년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시퀀스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당시 영화에서 살인이나 폭력은 보통 음습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일어났는데 백주대낮에 평화롭기 짝이 없고 풍요의 상징이기도 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라니. 서스펜스를 이끄는 쇼트의 배열도 일품이라 영화학도들은 통째로 외우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유명한 옥수수밭 시퀀스에는 영화적 서스펜스보다 더 무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가 발표된 해가 1959년이니 아마 1957~8년 무렵에 촬영됐을 것이다. 당시는 미국의 공장식 축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는데 그 이유는 옥수수의 엄청난 생산량 증가 때문이었다. 남미가 원산지인 옥수수는 물이 없어도 잘 자라는 대표적 작물이지만 인간에 의해 대량 생산된 적이 없었다. 하버-보슈 공법에 의한 화학비료가 발명된 후 옥수수는 인간에 의해 자연의 옥수수와는 다른 수퍼 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