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영락제 시기인 1405년 길이 44장(약 130m)에 이르는 대형 선박을 포함한 62척의 함선들이 소주를 떠나 남방으로 항해를 떠났다. 승무원이 2만 7천여명에 달했다니 하나의 도시가 움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함대의 총 사령관은 정화. 고위급 환관이었던 그의 나이 34세 때 일이었다. 정화는 원래 중국 남부 윈난성 이슬람교도 집안 출신이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윈난성을 공격할 때 어린 정화는 명군에게 붙잡혀 환관이 됐다고 한다. 이후 영락제에 등극한 후 환관고위직인 태감이 되었고 그의 특명에 따라 정화함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아랍,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했다. 정화의 함대는 한차례가 아니라 무려 7차에 걸쳐 남방원정에 나섰다. 정화는 34세부터 죽을 때까지 30여년의 인생 전체를 항해를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수차례에 이르는 이 엄청난 규모의 원정은 왜 시작을 했을까.원정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주원장의 손자인 건문제의 왕위를 찬탈한 영락제가 남방으로 탈출한 건문제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아랍 및 티무르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놓고 시끄럽다. 정부와 산업계, 환경단체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뜨거운 논쟁 때문이다. 정부가 이달 말 유엔에 제출할 예정인 ‘포스트2020’ 온실가스 감축 목표 안(案)이라는 것을 지난 11일 합동브리핑을 통해 내놓으면서 논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온실가스로 인해 머지않아 북극의 얼음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이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감축량을 놓고 밀고 당길 문제는 아닌듯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더 빨리 줄일 수 있을까에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이 아닌가 한다.정부는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연간 8억5천60만t을 기준으로 해 15%와 19%, 25%, 31%를 줄이는 4가지 시나리오을 제시하고 공청회와 국회토론회, 산업계, 환경단체 의견수렴 등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게 된다. 가장 강한 감축 시나리오인 31%를 줄인다 해도 감축 후 배출량은 연간 5억8천500만t으로 우리나라의 2005년도 배출량 5억9천400만t에서 큰 변화가 없는 수준이다. 정부도 나름 고심했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때문에 경제성장을 포기
리버풀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틀스(Beatles)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록음악의 시대를 연 비틀스는 확실히 리버풀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비틀스 음악에 등장하는 애비로드, 처음으로 연주를 했던 캐번클럽 그리고 존 레논 공항 등 비틀스와 관련한 장소들은 리버풀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축구를 좋아하는 젊은층들은 리버풀FC, 에버턴FC 등 축구팀을 리버풀의 상징으로 여긴다. 리버풀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전통적으로 유래가 깊다. 특히 리버풀FC는 80년대 최고의 팀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리버풀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반면 축구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압사 사고까지 이어진 훌리건들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곳도 리버풀이었다.리버풀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여객철도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여객열차가 처음으로 개통이 되어 여러 명사들이 이 철도를 이용했고 이후 여객열차와 우편열차들이 영국 각지에서 운행되기 시작했다.그밖에도 리버풀에는 유명한 상징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리버풀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리버풀 항구이다. 리버풀이 최초 여객기차의 종착역이 된 것도 유명한 항구가 있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는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보건당국은 국민들이 가질 충격과 피해를 고려한다며 발병 병원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10여 일이 지나고서야 마지못해 확진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을 공개했다. 그것도 대통령이 공개를 당부해 이뤄졌다는 점을 유달리 강조하는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모습에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매번 그렇듯 사태가 커지고 나서야 관련 대책본부가 줄줄이 등장하고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전형적인 ‘뒷북’ 행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시민들이 외출마저 꺼리면서 소비활동이 급격히 줄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욱 얼어붙게 됐다.삼성서울병원과 같은 내노라 하는 대형 병원들조차 안이하고 부실한 환자 관리로 2차, 3차 감염자 까지 발생하게 했다. 심지어는 고열과 기침을 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환자가 여기저기 병원을 돌아다니는 ‘핑퐁 환자’까지 나왔다고 하니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이유를 짐작케 한다. 메르스가 전염성이 강한 질환임을 감안하면 누가 뭐라해도 선 조치부터 해야 하는 것이 병원의 일반적 상식이다. 최초 확진환자 발생 병원으로 1
블라디보스토크, 이 멋진 이름은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가졌다. 대단한 의미의 그 뜻처럼 블라디보스토크는 예로부터 러시아의 극동 전진기지이자 중요한 항구였다. 현재도 러시아 극공함대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자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항로의 요충지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철도 요충지이기도 한데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반도 땅 북쪽에 위치한 연해주에 위치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도 유명하다.지금은 관광지역화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예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다.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이어진 시기에는 군사요새화되어서 외국인은 물론 러시아 내국인들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었다. 1860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서 베이징조약이 체결된 이후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되자 생활고에 쫓긴 조선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고려인’이라 불리면서 한민족 이민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다. 일제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한 연해주 인근이 토벌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얼어붙어있던 시기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이러닉하게 자유분방한 열기가 넘쳐났다. 유럽문화의 끝자락과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지난달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 회사간 통합을 결의했다. 양사간 통합작업은 7월로 예정된 양사의 임시 주주총회 승인과 9월1일 합병의 수순 만을 남겨둔 셈이다.삼성이 밝힌 합병회사는 ‘衣·食·住·休+바이오’를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 초일류 라이프스타일 창조기업이라고 한다. 건설과 상사, 패션, 식음, 바이오, 레저사업을 통합법인이 영위한다는 뜻이다. 양사 통합법인의 외형을 5년 뒤에는 지금의 2배로 키운다는 목표도 밝혔다.기업의 MA(인수합병)는 매우 흔한 만큼 이번 일이 새삼스러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번 삼성 핵심 계열사의 통합에 유독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삼성의 ‘3세 경영’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앞서 삼성은 지난 2013년 12월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흡수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에버랜드의 급식 식자재사업 분리, 건물관리사업 에스원 양도,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방위산업·화학 관련 4개 계열사의 한화그룹 인도 등 그룹 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재편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런 점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구조조정의 종지부라 할만하다
대한민국에 ‘조도’라는 섬은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부산에도 있고 남해에도 있고 속초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조도스러운 조도는 전남 진도에 딸린 조도라고 할 수 있다. 15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조도군도’이다.다른 조도들처럼 鳥島라고 쓰는데 한 마리 새가 아니라 ‘새떼’라는 의미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하조도이고 그 위에 상조도가 있다. 하조도와 상조도는 조도대교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조도훼리호를 타고 30여분 들어가면 하조도 어류포항에 닿는다.여느 여객선처럼 조도훼리호에도 자동차를 타고 탑승할 수 있다. 같은 조도이지만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조도와 그냥 걸어들어가는 조도는 사뭇 다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조도의 명물인 도리산 전망대 뿐만아니라 섬 곳곳을 빠르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반면 많은 것들들 놓칠 수 있고 섬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면이 있다.걸어서 항구에 내리면 우선 바삐 승용차들을 빼내는 부산스러움 대신 한적한 풍경과 일렁이는 상쾌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마을버스 혹은 도보로 섬을 다니면 많은 곳을 볼 수는 없지만 조도의 역사를 간직한 땅을 밟으며 맑은
경기도와 평택항만공사는 올해 3월 독일 브레멘주, 브레멘항만공사와 자동차 물류산업 확대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했다. 이 협약을 통해 경기도와 브레멘주는 자동차 물류를 넘어서 관련 분야에서도 점진적으로 지속적인 협력을 이루어나갈 전망이다.평택항은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및 수입을 처리하는 대표적인 항구다. 2010년부터 자동차 수출입 전국 1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 처리량은 1천만대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505,780대의 자동차를 수출입했다.평택항이 한국의 자동차 물류를 대표한다면 브레멘항은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중점 항만이라 할 수 있다. 규모는 독일 최대인 함부르크항보다 작지만 자동차 분야에 있어서는 독일 뿐만아니라 유럽 최대를 자랑하는 자동차 메카이다. 2012년에만 200만대가 넘는 독일 자동차들이 브레멘항을 거쳐 세계 각지로 수출됐다.그런데 브레멘항을 세계적 명소로 만든 것은 자동차 물량 때문만이 아니다. 브레멘항은 친환경 항만으로도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브레멘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린포트(green ports) 페이지가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레멘항이 지향하는 그린포트의 비전은 ’경제와 생태
예전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차를 몰고 서울 동작대교를 지나다가 와이퍼가 고장나는 사고를 당했다. 와이퍼가 고장나는 게 무슨 사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와이퍼가 작동 안될 때의 그 공포감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적어도 사고에 준하는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비상등을 켜고 서행을 해도 시야가 흐려서 불안한데다 혹시 뒤 차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달리다 추돌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까지 더해져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다리를 건너 자동차정비소가 있는 곳까지 불과 수 킬로미터를 운전해 오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뽑은 지 얼마 안되는 새 차였다. 화가 나서 자동차 회사에 전화를 해 사정 설명을 했더니 “그럴 리가 없는데요” 하다가 재차 항의하자 “어쩌다 그럴 수 있지만 극소수 경우”라고 변명을 했다. 전화 통화한 후 더 불쾌해졌다. 리콜이나 보상금을 바래서가 아니라 적어도 자동차회사 직원이 달려와서 점검을 하고 사과를 했어야 옳은데 그저 극소수의 경미한 결함으로 여기고 넘어간 것이다. 만약 달리다 바퀴가 빠졌어도 그렇게 대응을 했을까?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이지만 그 사고 이후 그 회사에 불신감을 가지게 됐고 그 회사 자동차
산이 있고 꽃이 있는 목포가 지금의 항구가 된 것은 1897년 10월 1일부터였다. 일제시대 들어서면서 날로 번창하기 시작해 1930년대 초 무렵에는 8.6 km2 넓이에 무려 인구가 6만여명으로 불어나 한반도 전체에서 6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김과 면화, 쌀, 소금의 최대 집산지여서 ‘일흑삼백(一黑三白)’의 항구로 불리기도 했다. 고 이난영 여사의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가 발표된 시기도 1930~40년대 목포가 항구로 전성기를 누릴 때였다.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1935년 목포 출신의 걸출한 가수 이난영과 함께 이 노래는 순신간에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목포는 항구로 날로 번창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노래에 배어 있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일본어로도 취입되어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데 당시 가사 중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대목이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년 원안풍은 노적봉”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가사로 불렸던 일화도 있다.목포의 눈물에 이어 목포를 전국적으로 알린 노래 제2탄이 1942년 발표된 목포는 항구다이다. 이 노래의 대히트 이후 목포가 항구란 사실은 어린아이들도 알게 될 정도였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목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