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대한도 지나고 입춘이 다가왔는데 아직 날씨는 쌀쌀하기만 하다. 향긋한 봄나물 보다는 아직은 뜨끈한 찌개 국물이 더 그리운 때이다. 한국인들만이 먹는 국물 있는 찌개는 별다른 레시피라고 할 거 없이 그냥 재료들을 넣고 끓이는 게 포인트인데 그 끓이는 과정이 단순해 보이면서 오묘하기까지 하다. 특히 평소 요리를 잘 안하던 남자들이 찌개를 끓이려면 그 단순함과 오묘함과 명쾌함 사이에서 헤매기 일쑤다.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검사가 아내와 전화 도중 말을 돌리려고 “왜 내가 끓인 찌개는 당신이 끓인 것처럼 맛이 안 나냐?”고 묻는다. 아내는 “그냥 계속” 끓이라고 말한다. 그 검사는 “계속 끓여? 그게 다야” 반문하며 의아해 하지만 아내는 태연하게 계속 끓이라고만 말한다. 영화 이끼에서도 이 명대사가 나왔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이끼에서 본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찌개의 맛에 관한 가장 명쾌한 답 중 하나니까.된장찌개는 그 동안 좀 끓여봐서 어지간한 식당 된장찌개보다 훨씬 맛있게 끓일 자신이 있다. “그냥 푸욱” 끓이면 된다. 어머니 말로는 “팔팔” 끓이면 된다고 한다. 문제는 김치찌개인데 아무리 맛있는 김치로 끓여도 맛이 안 나는
동네에 떠돌이 개가 있다. 낮에도 밤에도 종종 보는데 한 대여섯 번 마주쳤다. 겁 많은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개도 나 따위 신경 안 쓰는 듯 스쳐 지나가곤 한다. 그래도 밤에 아무도 없는 길목에서 마주치면 무섭다. 이 개가 진도개 종이기 때문이다.진도개가 작은 강아지를 무섭게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고 물려서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문제의 떠돌이 개도 사람에게는 덤비지 않는데 길고양이들을 습격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낮에 길고양이들이 있는 소나무숲에서 커다란 개소리와 함께 숲을 헤집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동의 주인공도 그 떠돌이 개로 추정된다.들개처럼 떠돌다가 병에 걸리거나 굶주림에 지치면 언젠가는 사람한테도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119나 구청에 민원신고를 하라고 한다. 그러면 포획해서 안락사를 시킬 텐데 내가 청부살해를 하는 것 같아 찝찝하기도 하고 옳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포획하다가 놓치게 되면 개는 더 공격적으로 돌변할 위험이 있다.포획을 할 수도 없고 마주치면 겁이 나긴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게 커다란 개껌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경기가 어렵긴 어려운지 극장가의 한국영화들은 복고풍 일색이다. 그 중 가장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작품이 국제시장이다. 한국 현대사의 어려웠던 시절을 관통해 온 세대들의 고단한 일생과 회한은 영화를 통해 충분히 묘사가 되었으니 여기선 잡시 접고 조금 다른 각도로 영화 이야기를 해 보겠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성장해 왔을 극한의 경쟁심리와 ‘하면 된다’로 표현되는 한국사회의 시스템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다.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흥남철수 작전에 사용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최대 승선인원이 2천명이었다고 한다. 이 배에 14,000명의 피난객들이 올라탔다. 무기들을 다 내렸다고 해도 엄청난 과적상태였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기살기로 배에 올라탔다. 떠밀리거나 가까이 가지 못해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십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미군은 철수하면서 흥남부두를 폭파시켜버렸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이틀 반나절을 항해한 후 거제도에 닿았는데 기적적으로 피난민 전원이 생존했고 아기들까지 태어났다. 미군은 아기들에게 김치1호 김치2호 등으로 별명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1만 4천여명 전원
백석 시인의 시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다. 시에서 풍기는 샤갈의 그림같은 선연한 회화성과 “세상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라는 비장미의 언발란스가 매우 독특해서 단박에 뇌리에 꽂힌 기억이 있다. 그리고 흰당나귀라니. 동화적이면서 조형적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최근에 안 사실인데 백석의 시들 중에 나귀와 당나귀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당나귀가 자유와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그것 뿐만아니라 순수하게 조형적인 회화성을 시에 부여하고자 당나귀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시인 백석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백석이 첫눈에 꽃혀서 사랑한, 그리고 백석의 사랑 못지 않게 백석을 사랑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내게는 더 흥미롭다. 자야 여사의 회고록 내사랑 백석이다. 백석의 연인이었던 기생 김자야 여사의 이야기인데 백석의 문학성을 논하는 글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아마 시인 백석으로라기보다는 인간 백석을 사랑했기 때문 아니었나 싶다.1936년, 고교 선생님이었던 26세의 백석과 조선권번 출신 기생이던 22세 김진향은 함흥의 한 술집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두 사람 다 첫 눈에 반해 그 날로 사랑을 불태웠다. 백석은 김진향에게 자야라는
필름 시절 사진기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몇 컷 쓸 건데? 그랬다. 한 컷 한 컷이 돈이고 다 회사 경비인지라 당연한 일이었다. 꼭 필요한 컷에 한 두 컷 여유 컷만 찍어줬다. 지면 구성을 미리 해서 컷 수와 사이즈 등을 계획해 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었지만 후에 사진을 고르는 수고도 없어서 나름 편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사진들 관리하는 게 큰 일이 되어 버렸다.그래도 전문가가 찍으면 개념이 있어서 적당히 고르고 분류해서 준다. 그러나 업체의 비전문가가 관련사진을 찍어서 주는 경우 몇 기가 혹은 수십 기가 씩 하는 파일 뭉텅이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회한 노트북에게는 거의 폭탄 수준이다. 내려받는데 한 세월 그걸 일일히 분류하는데 또 한 세월. 조그만 노트북은 거의 마비가 되어 다른 일을 못할 지경이다. 게다가 고르고 골랐는데 정작 쓸만한 사진은 없는 완전 난감한 사태도 종종 벌어진다.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만 열심히 충실할 뿐 ‘어떤 사진을’ ‘왜 찍는가’에 대한 사고가 결여되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후배 에디터들에게 어려운 촬영이 아니면 스스로 직접 찍는 버릇을 들이라고 권하곤 한다. 자기가 직접 찍으
연말에 몇 개의 바쁜 일정을 맞추느라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많이 이용했다. 원고 교정지나 책으로 된 문건 등 서류들은 이메일로 발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정지와 관련문건들을 검토한 후 퀵서비스를 수배해 거래처에 보낸다. 업체에 전화를 하면 20분 안이면 퀵서비스 기사님이 내방을 해 가져간다. 그리고 거래처에서 검토를 한 후 또 바로 퀵서비스로 서류들을 보낸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뭐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편한 시스템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녁 8시 이후까지도 퀵서비스 기사님들이 움직이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내가 있는 종로에서 마포 홍대입구까지 퀵서비스 이용 요금은 만 이천원. 내가 직접 가져다 줄 경우 왕복 한 시간은 족히 소요되고 요즘같은 연말이면 더 걸린다.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면 기름값이나 왕복 택시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 게다가 최소 한 시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퀵서비스를 이용하면 만 이천에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해결이 되니 굉장한 시스템 아닌가. 그런데 이 굉장한 시스템 안에는 좀 서글픈 인건비 계산법이 들어 있다.우리가 지불하는 퀵서비스 요금은 바로 기사에게 가는 게 아니다. 통상 업체에서 20~25%를 뗀 금액이 기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버스좌석의 창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창가에 앉은 사람만이 아니라 옆 통로 쪽에 앉은 사람 그리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 주변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창가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열 때에는 최소한 옆사람에게는 “창문을 열어도 되나요” 양해를 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창가에 앉은 사람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창문을 확 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건 뭐 너무 덥거나 답답해서 그렇다고 친다. 그럴 경우 옆에 앉은 사람이 “내가 감기가 걸려서 그러는데 창문을 닫아주실 수 있나요?” 요청할 권한도 마땅히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절차와 매너(라기보단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가 종종 아주 당연하게 무시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아주 오래 전 옆 사람이 다짜고짜 창문을 열길래 추운 나는 추우니 문을 조금 닫아줄 수 있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기분나쁘다는 듯 후, 한숨을 쉬고 거칠게 창을 닫아버렸다. 무서웠다. 그리고 몹시 불쾌했다. 그 이후로 난 옆 사람이 동의 없이 마음대로 창문을 열면 그냥 참거나 못 참겠으면 조용히 자리를 일어나 다른 곳으로 피한다.개방형 헤드폰을 쓰고
요즘은 ‘동반성장’, ‘공존’, ‘사회공헌’, ‘지속가능’ 등의 개념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너무 흔하게 쓰는 용어라서 그저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너도 나도 하는 듣기 좋은 말이라고 흘려 넘길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무심하게 생각했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이 용어들이 그저 듣기 좋은 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래 삶의 질을 결정지을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많은 공공기관을 비롯해 개인기업에서도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여겼던 과거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은 개인이 무능력해서 자초한 현실인데 왜 힘들게 번 돈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냐”고 반문하곤 한다. 혹은 가난하거나 불쌍해서 적선하는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도 많다.하지만 상생과 공존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같이 사는 것이다. ‘당신이 있어서 나의 존재가 있고’ ‘그들의 삶이 있어서 나의 삶의 유지된다’는 호혜(互惠)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공존과 동반성장의 참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개인기업에서도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던 주주자본주의 시대는 갔고 소비자의 행복이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떨어져 있는 솔방울들이 보여서 몇 개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 새똥과 흙들이 묻어 있어서 물로 깨끗이 씻어서 두었는데 잠시 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같이 야물지게 몸을 오무려 변신한 것이다. 처음엔 커다란 벌레들이 있는 줄 알고 기겁을 했으나 기하학적 모양으로 빈틈없이 단단하게 속을 보호하도록 여며진 모습을 보니 예쁘기까지 하다.어려서부터 솔방울들은 흔하게 보고 자랐지만 이렇게 유심히 솔방울을 들여다보기는 처음인 거 같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수분이 마르기 시작하자 딱 딱 소리를 내며 다시 꽃처럼 활짝 편다. 잎 사이 사이에서 깨알만한 씨앗들을 떨구기도 한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뒹굴던 애들이었는데 어떻게건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들의 놀라움이란 참 경이로운 수준이다.그냥 장식용으로 아무렇게나 매달아 둘 요량이었는데 얘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 난감하다. 가끔 물을 줘가며 키워야 하나 어쩌나 모르겠어서 네이버에서 솔방울을 검색해보니 쇼핑몰 사이트가 먼저 뜬다. 들어가 보니 솔방울 10개에 5천 얼마씩 판다. 한 개에 5백원 꼴이다. 인터넷 쇼핑몰에 뜰 정도면 이미 솔방울들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좀 더 자세
지난 11월 6일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향후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요지는 페이스북 사용자에게 끊임없이 스크롤되는 뉴스피드를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에 맞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자체의 검토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는 하루에 평균 1500건 이상의 뉴스피드 스토리에 노출되는데 이 중 사용자가 관심을 갖고 확인하는 뉴스피드 비율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용자별로 관심이 있는 뉴스피드만을 노출시켜 뉴스피드에 집중하는 비율을 늘리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은 정보 교류 뿐만아니라 뉴스를 구독하는 창으로서의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페이스북은 앞으로 어떤 한 개인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그가 관심있어 하는 뉴스만 선별해 올리는 방안을 집중 개발할 것이다. 뉴스 뿐만아니라 기업의 광고도 개인의 선호에 따라 맞춤하녀 노출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아름다운 우애를 돈독히 하는 동안 정작 페이스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광고 전략 중 하나로 facebook exchange라는 게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